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여헌(汝獻). 서울 출생. 아버지는 증좌승지 장정익(張廷翼)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난을 피하여 어버이를 모시고 강화도로 들어갔다. 강화도가 적에게 함락되어 어버이가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
어버이가 죽는 것을 보고 따라서 죽고자 하였으나 어버이가 죽기 전 너는 독자인데 어찌 죽을 수 있느냐고 꾸짖었다. 그래서 죽지 못하고 붓을 던진 뒤 어버이와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무술을 연마하였다.
1644년(인조 2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이어서 오위도총부도사를 지내고 평해군수로 나갔다. 목민관이 되어서는 검소한 생활로 군민에게 모범을 보이고 부역을 경감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뒤에 황해도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사람됨이 신실하고 곧아서 당시의 대신인 정태화(鄭太和)·이완(李浣)·김수항(金壽恒)·민정중(閔鼎重) 등이 중요한 인물이라고 추천하였다.
총명이 남달라 사람의 얼굴만 보고도 마음속에 감추어둔 사실을 알아냈고, 말소리를 듣고도 미묘한 곳까지 살폈다. 의심나는 일을 물이 흘러가듯 쉽게 해결하였고 활솜씨가 뛰어나서 백보천양(百步穿楊: 백보의 거리에 있는 버드나무도 뚫을 수 있음.)의 신기를 간직하였다.
그가 죽자 모두 간성(干城: 국가를 위해 방패와 城이 됨.)의 재목을 잃었다고 슬퍼하였다. 이의현(李宜顯)은 ‘참으로 어려울 때 태어나서 자기 직분에 충실하고 국사를 위하여 헌신한 사람’이라고 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