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걸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배비장전」과 「이화전」을 모방하였으나, 두 작품의 줄거리를 확장하면서 두 작품과는 다른 남성의 고난과 출세의 현실적 한계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영웅소설이라는 점 또한 특징적이다.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사람인 장익은 재산은 많으나 자식이 없어, 재산을 흩어 선행을 쌓은 결과 아들 인걸을 얻는다. 장인걸은 자라서 독서와 무예를 익히던 중 13세에 부모를 잃는다.
15세에 과거를 보고 장원 급제(壯元及第)하지만 조정(朝廷)에서는 장인걸에게 벼슬을 주지 않는다. 3년이 지나도록 벼슬을 하지 못한 장인걸은 한량 · 창부와 더불어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친구인 우직이 절세미인(絕世美人) 정 소저(小姐)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말에 혹하여 매화동(梅花洞)에 가서 정 소저와 가약(佳約)을 맺는다.
장인걸은 밤에 정 소저와 동침하다가, 정 소저의 아버지가 왔다는 말을 듣고 벌거벗은 채로 궤(櫃)에 들어가 숨는다. 정 소저의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 궤를 도끼로 치라고 하다가, 바다에 갖다 버리라고 한다. 궤에 숨어 있던 장인걸은 하인들에게 애원하여 겨우 살아난다. 그러나 그것은 친구 우직이 장인걸의 돈을 뜯어내기 위한 속임수였음이 밝혀진다.
재산을 모두 탕진(蕩盡)한 장인걸은 실의(失意)에 빠진 끝에 자살하려고 송악산(松嶽山)에 올라갔다가 청파역의 역리(驛吏)를 만난다. 장인걸은 역리의 권유를 받아, 재앙과 변고로 인해 황폐해진 인주 지역의 목사를 자원한다. 인주목사로 부임(赴任)한 장인걸은 이방(吏房)의 집 대문의 자물쇠에 접신(接神)한 이연쇄(이연쇠(李連鎖))의 지시를 받아, 밤만 되면 처녀들을 괴롭히는 수백 년 묵은 원숭이를 퇴치한다. 또 수천 년 묵은 여우도 퇴치함으로써 인주의 재앙과 변고를 없앤다. 이에 국왕은 장인걸에게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제수(除授)한다.
이때 장인걸이 퇴치한 암컷 여우 2마리 중 1마리가 여진(女眞)으로 들어가 여진의 장군이 되어 고려를 침공하려고 한다. 이에 상서 장인걸은 대원수(大元帥)가 되어 출정한다. 원수 장인걸은 자물쇠를 내어 놓고, 이연쇄에게 적을 물리칠 방법을 알아 내어 적장을 죽인다. 그러자 장인걸이 죽인 적장이 구미호로 변한다. 장인걸이 여진의 항복을 받고 돌아오니 국왕은 그를 승상(丞相)으로 삼는다.
한편, 암컷 여우 중 나머지 1마리가 중국으로 들어가 황제의 계후(繼后)가 되어 장인걸을 중국으로 불러들인다. 승상 장인걸은 이연쇄의 말에 따라 온갖 고생 끝에 선계(仙界)의 신선을 찾아가서 보라매를 얻고 중국으로 간다. 황제 앞에 나아간 장인걸은 보라매를 내어놓는다. 보라매가 내전(內殿)으로 날아가서 황후(皇后)의 두 눈동자를 빼니, 황후는 구미호로 변하며 죽는다. 황제는 그 내막을 듣고 기뻐하며 장인걸을 천하병마대도독으로 삼는다.
단간 · 가달 · 월지(月氏)의 삼국이 연합하여 중원(中原)을 침공하자, 도독(都督) 장인걸이 출전하여 이들을 격퇴한다. 장인걸은 이연쇄의 청을 듣고, 이연쇄의 아내와 아들을 찾아 주고 이들에게 자물쇠를 건네준다. 장인걸은 황제에게 상소(上疏)를 올려 자신을 고국(故國)으로 돌려보내 주기를 청하지만, 황제는 장인걸을 사랑하는 나머지 그를 돌려보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황제는 대신들의 상소로 할 수 없이 장인걸을 귀국시킨다. 고국으로 돌아온 장인걸은 다시 승상이 되어 백성들을 잘 다스리다가, 나이 70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방장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된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출생설화와 출세설화(出世說話)는 다른 고전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독창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아버지의 개과천선(改過遷善)에 하늘이 감동하여 주인공을 점지해 주는 내용은 「이윤구전(李允九傳)」과 유사하다. 주인공 장인걸이 벼슬을 얻기 위하여 권세가 있는 신하의 집에 출입하면서 금은을 바치는 것은 현실적인 측면을 보여 주는 독창적인 내용이다.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영웅소설이라는 점 또한 매우 독창적이다.
전반부에서 주인공이 우직이라는 건달에게 속아 수백만 금을 탕진하고 정 소저라는 미인에게 유혹되어 망신을 당하는 부분은 절개를 깨트린 남성이 궤에 들어가 곤욕(困辱)을 치른다는 ‘궤 설화’의 영향을 받은 「배비장전」을 모방하여 주인공의 고난을 극대화했다. 이는 향유층(享有層) 남성들이 가지는 현실적 고난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망신을 당한 장인걸이 인주목사가 되어 요괴를 퇴치하는 후반부는 「이인이 된 소금장수」 설화의 영향을 받은 「이화전」을 모방하여, 현실의 고통과 어려움을 조력자의 도움으로 극복하고 싶어 하는 향유층의 소망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장인걸이 대원수가 되어 고려를 침공해 온 여진족(女眞族)을 격파하는 부분은 「이화전」에는 없는 군담(軍談)이다. 「장인걸전」에서는 이와 같은 군담을 넣음으로써 주인공을 영웅화시키고 있다. 이런 점은 영웅소설의 구성을 모방했다고 할 수 있다.
「장인걸전」은 이전에 나온 「배비장전」과 「이화전」을 모방한 것이 틀림없으나, 두 작품에 없는 여러 가지 사건을 독창적으로 구성하여 두 작품보다 더 복잡하게 사건을 전개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주인공의 영웅적 활동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능력을 과시하고 민족적 우월감을 표현했다는 데에 가치가 있다. 주인공이 중국으로 들어가 요괴를 퇴치하여 중국의 대신들을 제쳐 놓고 대원수가 되고, 중국을 침공하는 호족을 격파한다는 데에서 우리 민족의 능력을 과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