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현 장군 순절비 및 전적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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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영동 추풍령 전적 및 장지현 순절비 전경
영동 추풍령 전적 및 장지현 순절비 전경
조선시대사
유적
국가유산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에 있는 조선후기 의병장 장지현 관련 기념비. 전적지.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영동 추풍령 전적 및 장지현 순절비(永同 秋風嶺 戰蹟 및 張智賢 殉節碑)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순절지
지정기관
충청북도
종목
충청북도 시도기념물(1994년 12월 30일 지정)
소재지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사부리 51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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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에 있는 조선후기 의병장 장지현 관련 기념비. 전적지.
내용

1994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순절비 비신(碑身)은 높이 192㎝, 폭 62㎝, 두께 30㎝이며, 기대석(基臺石)은 1958년에 보수하였다. 본래는 1864년(고종 1) 추풍령에 세웠는데, 1980년 순국지인 사부리에 충절사(忠節祠)를 건립하면서 지금 위치로 옮겼다.

장지현(1536∼1593)의 본관은 구례(求禮)이고, 호는 삼괴(三槐)로 영동읍 매천리에서 태어났다. 당쟁이 심화되자 관직에 진출의 뜻을 포기하고 향리에서 문무에 힘써 그 명망이 높았다. 1590년(선조 23) 전라병사 신립(申砬)의 추천으로 그 부장(部將)이 되었고, 이듬해 감찰에 올랐으나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추풍령(秋風嶺)에 진을 치고 있던 중 김산방면에서 공격해 온 왜군 구로다[黑田長政]부대를 맞아 오룡동에서 혈전을 벌이다가 중과부적으로 전사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정려(旌閭)되었으며, 영동의 화암서원(花岩書院) · 무주의 죽계서원(竹溪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전국문화유적총람』 2(문화재연구소, 1996)
『인물지』(충청북도,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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