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성균관사예, 예조정랑, 양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소문이 왕에게 알려져 1699년 급제자 중 부정에 관계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다시 합격되었다. 그 뒤 성균관의 학유·학록·학정을 거쳐 1714년 박사가 되었고, 이듬해 전적에 올랐다. 1716년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1720년 성균관직강이 되었다.
1722년(경종 2) 성균관사예를 거쳐 예조정랑이 되었으며, 이듬해 함흥의 능침실화사건에 이사상(李師尙)과 함께 봉심관(奉審官)이 되어 다녀왔다. 그 뒤 양산군수로 나가서는 탐리를 다스리고, 세금과 부역을 경감하며, 생업을 권장하는 등 선정을 펴 군민이 장후상의 공적을 추모하여 철비를 세웠다.
1726년(영조 2) 선전관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728년 이인좌의 난에는 근왕병을 일으켜서 적을 막았다. 저서로는 『석문시고(石門詩稿)』 3권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석문시고(石門詩稿)』
- 『숙종실록(肅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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