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27년 동경에서 일본지역의 조선인 민족운동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되었던 단체.
개설
재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는 1925년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의 결성 이후 전개된 3.1기념투쟁, 국치일투쟁, 관동(關東)진재조선인학살추도회 등 재일조선인 민족운동의 성과를 더욱더 활발히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결성되었다. 명칭은 협의회였으나 일시적인 조직이 아니라 상설적인 기관으로서 활동하였다.
기능과 역할
이 밖에도 자유노동조합 강동부, 조선인배달원조합, 동흥노동동맹회(東興勞動同盟會), 대기조선인일반노동조합(大崎朝鮮人一般勞動組合), 조선여자학흥회, 동경조선연합기독교회, 재일본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在日本東京朝鮮基督敎靑年會), 조선기독교청년회조선기독교청년회 천도교청년당동경부(天道敎靑年黨東京部), 협동조합운동사, 고학생형설회, 고려공업회 등으로 볼셰비키와 아나키즘, 민족주의 등 모든 조선인 단체가 망라되어 있다.
당시 동경에서 신간회 동경지부가 결성되었기는 하나 주의·주장을 불문하고 조선인으로 조선민족의 해방을 희구하는 단체 18개가 결집하였다는 점에서, 형식과 실제에 있어서 신간회보다 더욱 광범위한 조직이었다는 점을 그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주요 활동은 연대와 공동투쟁이었다. 재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와 신간회 동경지회의 지도층이 중복된 것으로 미루어 두 단체의 활동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구체적인 활동으로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과 함께 식민지시대 최대의 재일조선인 민족운동인 조선총독폭압정치반대투쟁을 전개한 것을 비롯해 1928년 3월 1일에 열린 기념행사 주최, 9월 30일 관동진재조선인학살추도회 주최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1928년 1월 27일, 신간회 토쿄지회 회관에서 결성된 ‘삼총해금관동동맹(三總解禁關東同盟)’에 가입했다.
이 단체는 비록 협의회적인 성격의 단체였으나 구성단체의 수나 성격에서 신간회 일본지회의 조직을 능가했다. 그러나 결성 이후 1927년 12월에 아나키즘계열이 탈퇴해 전 재일조선인의 통합기구로서의 성격이 약화되었다. 그리고 활발한 반제민족운동 전개에도 불구하고 그 활동은 1920년대에 그치게 되었다.
참고문헌
- 『東京朝鮮人諸團體歷訪記』(朴尙僖, 朝鮮思想通信社, 1927)
- 『在日朝鮮人運動史-8·15解放前-』(朴慶植, 三一書房, 1979)
-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朴慶植 編, 三一書房, 1975)
- 『在留朝鮮人の運動』(內務省 警務局, 1931)
- 『朝鮮思想通信』(19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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