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 ()

근대사
단체
1927년 동경에서 일본지역의 조선인 민족운동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되었던 단체.
목차
정의
1927년 동경에서 일본지역의 조선인 민족운동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되었던 단체.
개설

하호총정(下戶塚町) 추방(諏訪) 164번지 소재 조선청년동맹 사무실에서 조직되었다.

재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는 1925년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의 결성 이후 전개된 3.1기념투쟁, 국치일투쟁, 관동(關東)진재조선인학살추도회 등 재일조선인 민족운동의 성과를 더욱더 활발히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결성되었다. 명칭은 협의회였으나 일시적인 조직이 아니라 상설적인 기관으로서 활동하였다.

기능과 역할

결성 당시 참가단체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在日本朝鮮勞働總同盟), 동경조선노동조합(東京朝鮮勞動組合) 본부, 동경조선노동조합(東京朝鮮勞動組合) 지부(동부지부, 서부지부, 남부지부, 북부지부, 옥천지부), 동경조선청년동맹, 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 신흥과학연구회(新興科學硏究會), 신간회 동경지회, 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 흑풍회(黑風會), 자유노동조합 등이었다.

이 밖에도 자유노동조합 강동부, 조선인배달원조합, 동흥노동동맹회(東興勞動同盟會), 대기조선인일반노동조합(大崎朝鮮人一般勞動組合), 조선여자학흥회, 동경조선연합기독교회, 재일본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在日本東京朝鮮基督敎靑年會), 조선기독교청년회조선기독교청년회 천도교청년당동경부(天道敎靑年黨東京部), 협동조합운동사, 고학생형설회, 고려공업회 등으로 볼셰비키와 아나키즘, 민족주의 등 모든 조선인 단체가 망라되어 있다.

당시 동경에서 신간회 동경지부가 결성되었기는 하나 주의·주장을 불문하고 조선인으로 조선민족의 해방을 희구하는 단체 18개가 결집하였다는 점에서, 형식과 실제에 있어서 신간회보다 더욱 광범위한 조직이었다는 점을 그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주요 활동은 연대와 공동투쟁이었다. 재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와 신간회 동경지회의 지도층이 중복된 것으로 미루어 두 단체의 활동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구체적인 활동으로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과 함께 식민지시대 최대의 재일조선인 민족운동인 조선총독폭압정치반대투쟁을 전개한 것을 비롯해 1928년 3월 1일에 열린 기념행사 주최, 9월 30일 관동진재조선인학살추도회 주최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1928년 1월 27일, 신간회 토쿄지회 회관에서 결성된 ‘삼총해금관동동맹(三總解禁關東同盟)’에 가입했다.

이 단체는 비록 협의회적인 성격의 단체였으나 구성단체의 수나 성격에서 신간회 일본지회의 조직을 능가했다. 그러나 결성 이후 1927년 12월에 아나키즘계열이 탈퇴해 전 재일조선인의 통합기구로서의 성격이 약화되었다. 그리고 활발한 반제민족운동 전개에도 불구하고 그 활동은 1920년대에 그치게 되었다.

참고문헌

『東京朝鮮人諸團體歷訪記』(朴尙僖, 朝鮮思想通信社, 1927)
『在日朝鮮人運動史-8·15解放前-』(朴慶植, 三一書房, 1979)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朴慶植 編, 三一書房, 1975)
『在留朝鮮人の運動』(內務省 警務局, 1931)
『朝鮮思想通信』(1927.11)
집필자
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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