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광(朴漢光)이 시필자이며, 시필 연대는 1834년(순조 34)이다.
그 뒤 박한광의 차남 박득녕(朴得寧, 1808∼1886)이 일기를 이어 썼으며, 『나암수록(羅巖隨錄)』의 저자인 아들 박주대(朴周大)를 거쳐 손자 박면진(朴冕鎭), 증손 박희수(朴熙洙), 그리고 현손 박영래(朴榮來)가 계속 쓰다가 6·25가 발발한 1950년으로 끝나 있다.
박주대가 1895년(고종 32) 쓴 일기의 서문에는 꼭 기록해야 할 사목(事目) 일곱 가지가 있다. ① 천기(天氣)의 음청(陰晴), 즉 날씨, ② 세시(歲時)의 풍흉(豊凶), 즉 작황, ③ 자가(自家)의 출입, 즉 손님의 출입, ④ 농사의 경작과 수확, ⑤ 계절의 길흉과 이변, ⑥ 인리(隣里)와 향토의 사건, ⑦ 조정(朝廷) · 시중(市中) 및 포구 · 항구에서 일어난 사건 등이다.
이 일기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긴 작품이며, 내용 또한 근대 100년 역사를 담고 있어서 주목된다. 조선왕조 23대 순조 말년에서 시작되어 24대 헌종, 25대 철종, 26대 고종, 27대 순종을 거쳐 일제 36년, 그리고 광복 후 6·25에 이르는 긴 역사가 실려 있다. 파란만장했던 이 시기의 사회 · 경제 · 정치 · 문화상이 드러나 있는 셈이다. 특히 집필자의 거주지인 경상북도 예천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은 다른 일기류에서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특징이다.
그러나 사건 묘사가 매우 간략해 이 일기만으로는 체계적인 이해가 어렵다는 점, 먼 지역의 소식을 소문으로만 적었기 때문에 날짜에 차이가 있고 사건 내용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은 한계이다.
이 일기와는 별도로 『저상일용(渚上日用)』이라는 자가경리(自家經理)에 관한 가계일기(家計日記)가 있다.
『저상일월』은 『나암수록』 · 『당시고취(唐詩鼓吹)』 · 『당조책림(唐朝策林)』 · 『만국전도(萬國全圖)』 · 『통감(通鑑)』 · 『저상일용』 등과 더불어 「함양박씨 정랑공파 문중 전적(咸陽朴氏 正郞公派 門中典籍)」으로서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9년 8월 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