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백사(白史). 함경남도 북청 출생. 전주협(全周協)의 아들이다.
1937년 북청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1945년 경성경제전문학교(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전신)에 입학, 2년 수료하였다.
194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1951년에 졸업하였으며, 이어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1953년에 졸업하였다. 1955년 서울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1984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봉직하였으며, 그 뒤 세종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하였다.
1973년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별나라 공주와 토끼」로 입선하였으며, 1955년 『조선일보』에 「흑산도(黑山島)」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1948년 ‘주막(酒幕)’ 동인을 정한숙(鄭漢淑)·정한모(鄭漢模)·남상규(南相圭)·김봉혁(金鳳赫)과 함께 창립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재학 중에는 한성일보(漢城日報) 기자 생활도 하였다.
1956년 학술논문 「설중매(雪中梅)」로 사상계 논문상, 1962년 단편소설 「꺼삐딴 리」(사상계, 1962.7.)로 제7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한국현대문학연구회 회장,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회장, 한국비교문학회 부회장 등으로 창작과 문학 연구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단편집으로 『흑산도』(1959)·『꺼삐딴 리』(1975)·『동혈인간(凍血人間)』(1977)·『목단강행열차(牧丹江行列車)』(1978)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나신(裸身)」(1965)·「창과 벽」(1967)·「태백산맥(太白山脈)」(1978) 등이 있다.
대표적 논문으로는 「설중매」를 비롯한 「신소설연구」가 1955∼1956년 사이에 『사상계』에 연재되었고, 「이광수연구서설」이 『동양학(東洋學)』 4집에 게재된 바 있다. 논문 연구의 방법은 철저하게 실증적인 고증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주의적 연구방법론을 중시하였다.
작품의 특색은 대부분 직접 체험한 바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등단 작품인 「흑산도」는 학술답사 기록문에서 소재를 따온 것이며, 「진개권(塵芥圈)」(1955)은 휴전선 오지(奧地)에 있는 미군 쓰레기칸에서, 「지층(地層)」(1958)은 태백산의 탄광에서 경험한 바를 서술한 것이다.
그리고 「충매화(蟲媒花)」(1960)는 이웃 의사의 경험담에서, 「곽서방(郭書房)」(1962)은 다도해 경호도(鏡湖島)의 반농반어촌(半農半漁村)에서 취재한 것을 소재화한 것이다.
대표작인 「꺼삐딴 리」는 시류에 적절하게 편승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의사를 모델로 한 소설로, 일제 말엽부터 6·25 때까지 한 지식인이 살아 남기 위하여 어떻게 변신하는가를 실감 있게 그린 작품이다.
「사수(射手)」(1959)는 극한상황 속에서의 친구간의 미묘한 경쟁심리와 심리적 갈등 속에서도 빚어내는 깊이 있는 우정의 확인을 모색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냉철한 사실적 시선을 바탕으로, 현실적 부조리한 실상을 고발하려는 경향이 짙어 작품의 리얼리티를 실감 있게 살렸다는 면에서 높게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