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호은(湖隱)·정송(梃松). 평안북도 용천 출신.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다. 1905년 일제의 강압으로 을사5조약이 체결되자, 각국 공사에게 격문을 보내고 의병을 일으켜 관서지방에서 항전하였다. 1906년 체포되어 유형 15년의 선고를 받고 황주(黃州)에 유배되었다.
1912년 만주로 망명하여 1919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 군사부장이 되어 10여 차례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2년 2월 각 단체 통합기관으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가 결성되었을 때 재무부장이 되었다. 그 뒤 8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로 개편되자 경무총감(警務總監)에 추대되었다.
1923년 의군부(義軍府)를 조직하고 군무통감(軍務統監)으로 소속독립군을 지휘, 통솔하였다. 같은 해 8월 소속유격대장 이경일(李京日), 소대장 전일록(全日錄)에게 명하여 50명의 대원을 인솔,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독립군은 평안북도 의주군 청성진(淸城津)을 공격, 경찰관주재소·세관출장소·우편국을 기습, 파괴하고 일본경찰과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다. 그 뒤 계속 국내진입작전을 수행하였는데, 1927년 2월 대규모의 작전을 준비하던 중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28년 2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2년이 선고되자 형량이 가볍다고 힐책한 뒤, 죄명이 강도죄인 데 대해 항의하였다. 출옥 후 동지들과 독립운동사를 편찬하며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박상문(朴尙文)의 밀고로 다시 붙잡혀 복역 중 옥사하였다.
대한제국 황실에 충실한 복벽주의자로서, 상투에 두루마기를 입고 연호도 황실 연호를 사용하여 독립운동자간에는 수구파로 지칭된 인물이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