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곡식 등의 양을 재던 계량단위.
내용
그러나 고려 때부터 미곡양기의 용적과 말장곡(末醬斛)·패조곡(稗租斛)·대소두곡(大小豆斛)의 양기 용적이 모두 다르게 되어 있어 1석이라 하더라도 그 용적이 차이가 있었으므로, 이것을 통일시키기 위하여 세종 때 만든 기준양제에서는 15두를 1석으로 하는 이외에도 20두를 1석으로 하는 표준양기를 제정하여 이것을 전석이라 하여 15두를 1석으로 하는 평석과 구별하게 하였다. 또, 이 20두를 1석으로 하는 것을 대곡(大斛)이라고도 하였다.
따라서 전석의 용적은 세종영조척으로 3,920입방촌이었는데 그것은 119,285㎤에 해당하였다. 15두를 1석으로 하는 것이 주로 곡물 계량에 쓰인 데 비하여 20두를 1석으로 하는 것은 주로 말장류 계량에 쓰였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이조척도표준(李朝尺度標準)에 관한 고찰(考察)」(박흥수, 『도(道)와 인간과학 -이동식선생화갑기념논문집-』,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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