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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식 전화기(1920년)
자석식 전화기(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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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음파를 전파나 전류로 바꾸어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고 이것을 음성으로 되바꾸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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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말의 음파를 전파나 전류로 바꾸어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고 이것을 음성으로 되바꾸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장치.
내용

실용 전화기의 발명은 미국에서 1876년 3월 10일 음파의 진동을 전류로 바꾸어 음성을 전하는 실험에 성공한 후이며, 같은 해 10월 9일 처음으로 보스턴과 케임브리지 사이의 원거리 통화가 이루어졌다.

당시의 전화기는 전자석(電磁石) 앞의 진동판이 음파의 떨림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으나 1877년에 영구 자석을 사용하게 되면서 오늘날과 비슷한 성능을 지닌 수화기가 나타났다.

우리 나라에는 1893년 11월에 전화기가 처음 들어왔으나 실제 통화는 1898년 1월 궁중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전화기는 너비 50㎝, 길이 90㎝쯤 되는 붉은색 벽대기에 붙인 벽걸이식으로서 송수화기는 분리되고 수화기판에 신호를 돌리는 손잡이와 딸딸이가 딸려 있었다.

한편, 전화기(telephone)를 한자의 음을 따서 덕진풍(德津風) 또는 득진풍(得津風)으로 적었으며 전어기(傳語機)라고도 불렀다. 이때의 전화기는 단선에다가 전신까지 함께 사용하였고 더구나 동선(銅線)이 아닌 철선이어서 감도가 매우 나빴으며 궁중에서도 전화가 오면 관원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거나 입을 다물어야 할 정도였다.

전화기 도입 초기에 수구파에서는 전국에 가뭄이 들자 ‘하늘의 전기 바람이 비구름을 말리고 땅의 덕진 바람이 땅위의 물을 말린 때문’이라는 동요를 퍼뜨려서 그 원인이 전화기에 있다고 비방하였다.

또 궁중에서도 황제의 옥음(玉音)이 전화기에 의해 변질되는 것은 황제의 권위는 물론 국가의 체면까지 깎는 일이라는 반대 여론이 일기도 하였다.

한편, 민간에서는 전신 전화설비가 외세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그들의 세력확장에도 이용되었다고 믿었던 까닭에 전화를 놓으면 의병에게 해를 입으리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하였다.

실제로 개통 2년 뒤인 1905년 4월에 민간 전화는 50대로 늘어났으나 한국인 가입자는 10명 내외에 지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추세는 일제강점기에도 계속되어 전화를 놓은 집에서는 실제로 이를 써야 할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서울의 경우 10여 호 가운데 전화 가입자는 한 집이 있을까 말까한 정도였다. 일제강점기에 자석식이던 전화교환방식은 공전식, 자동식 그리고 ST식으로 바뀌었으며 광복 후인 1962년에는 ST교환기가, 1965년에는 EMD교환기가 국산화되었다. 그리고 1984년부터는 모든 교환기가 전자교환방식으로 전환되었고 국제통화 또한 자동화되었다.

이어 1990년대에는 무선전화기가 등장하였고, 그에 따른 전화기도 이동에 편리하도록 고안되었다. 가정이나 사무실 등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통화가 가능한 무선전화기가 나오게 되었고, 먼 거리에서 휴대하면서 무선으로 받는 것만 용인되었던 속칭 ‘삐삐’가 이제는 송수가 가능한 ‘핸드폰’으로 바뀌어 그 크기와 모양이 소규모로 다양하게 바뀌었고, 21세기에는 소규모의 다양한 휴대용 전화기의 영상을 통해 송수가 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1975년 무렵까지도 전화시설은 수요에 크게 못 미쳐서 전화가입권이 아파트 값과 맞먹었으며, 전화 자체가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나타내는 표시물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0년 말 현재는 전국 어디서나 신청과 거의 동시에 전화 가설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전화의 수단과 기능도 다양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개화백경(開化百景)』 3(이규태, 신태양사, 1969)
『서울육백년사』 3(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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