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선여(善餘). 서울 출신. 영의정 정철(鄭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좌랑 정종명(鄭宗溟)이고, 아버지는 생원 정직(鄭溭)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서 자랐다. 어려서 입학하였으나 지극한 정성으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정진하여 침식을 잊는 일이 많았다. 1630(인조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43년(인조 21) 향천(鄕薦)으로 영릉참봉(英陵參奉)에 기용되었다.
그 뒤 지방의 수령으로 여러 곳을 돌아다녔으나 검소한 생활과 부지런한 정무로 주민에게 모범을 보여서 청렴결백하다는 찬사를 들었다. 천성이 효성스러워서 홀어머니를 50여년이나 모셨는데, 관에 봉직하는 이외에는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고, 외지에 부임할 때에도 어머니를 항상 모시고 갔다.
뒤에 평릉도찰방(平陵道察訪)이 되었으나 1665년(현종 6)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 이듬해 어머니의 상을 당해서 너무 애통한 나머지 병을 얻어 한달 만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