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승려인 정관 일선의 시문집으로서 1641년에 손제자인 성호(性浩)에 의해서 안심사(安心寺)에서 간행되었다. 시 74수와 문 13편이 수록되어 있다.
1641년에 쓴 시남 창수(市南傖叟)의 서문에 의하면, 정관 일선의 제자인 보천(普天)이 죽은 후 손제자인 성호가 와서 서문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1권 1책. 『한국불교전서』 제8책에 수록되어 있다.
정관 일선은 속성이 곽씨(郭氏)이며, 충청도 연산(連山) 출신이다. 15세에 출가하여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법을 이었다.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과 함께 휴정의 4대 제자 중 한 사람인데, 의승군의 대장이었던 사명과 달리 전란 속에서도 승려로서의 본분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정관집(靜觀集)』에는 시 64편 74수와 문 13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주로 즉경(卽景)적인 서경(敍景)이 많으나 한결같이 선미(禪味)가 깃들어 있다. 예를 들면 「유은선우음(留隱仙偶吟)」은 은선암이라는 암자를 보고 지은 시이지만, 암자가 안고 있어야 할 내면적 선(禪)을 말하고 있다. 한편 사찰의 정경을 읊은 시도 많은데, 「숙원효암(宿元曉庵)」·「제대둔사(題大芚寺)」·「제칠불암(題七佛庵)」·「제통도사(題通度寺)」 등이 있다.
선수행을 강조한 시도 있는데, 「제시승(題詩僧)」·「증맹선자(贈盲禪者)」·「본원자성천진불(本源自性天眞佛)」 등이 그것이다. 「제시승(題詩僧)」에서는 시를 읊고 음풍농월하면서 심신을 피곤하게 하지 말고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깨달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명 유정에게 보낸 글이나 시도 많은데, 「상도대장년형(上都大將年兄)」은 전쟁이 끝났으니 불문(佛門)으로 돌아올 것을 권유한 내용이다. 또 왜란이 끝난 후인 1641년에 사명 유정이 일본에 사신으로 갈 때 보낸 편지가 「상송운대사(上松雲大師)」이다. 여기에는 먼 길을 떠나는 사명에 대해 노병(老病)으로 전송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절절히 드러나 있다. 「송정대장왕일본(送政大將徃日本)」도 이 때 사명에게 보낸 시이다. 한편, 시 가운데는 정관의 「임종게(臨終偈)」 2수도 수록되어 있다.
문 13편 가운데는 서(書)·발(跋)·소(疏) 등이 포함된다. 「시시자보천선자(示侍者普天禪子)」·「답정법사서(答靖法師書)」·「박거사수도호이인지서증(朴居士須道號以仁智書贈)」 등은 제자나 재가거사에게 보낸 서간이며, 「인경후발(印經後跋)」은 『법화경』·『능엄경』을 간행한 후에 쓴 발문이다. 그리고 추천소(追薦疏)로서 「망부소(亡父疏)」·「망모소(亡母疏)」·「망사소(亡師疏)」가 수록되어 있으며 「수륙소(水陸疏)」도 1편이 실려 있다.
『정관집』은 승려로서의 본분을 지키려고 하는 정관 일선의 각오가 엿보이는 시문집이다. 조선시대 불교사에서는 전란에서 의승활동을 한 청허 휴정이나 사명 유정이 돋보이는 경향이 있으나, 『정관집』은 당시에 그와는 다른 중도적 입장을 견지한 승려도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