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덕이(德而), 호는 휴휴자(休休子). 정유징(鄭有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치중(鄭致重)이고, 아버지는 정진후(鄭震垕)이며,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허장(許樟)의 딸이다.
1730년(영조 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1733년에는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이 되고, 이듬해 병조좌랑을 역임하였으며, 1735년에는 공총도도사·해군판관을 겸임하였다. 그 뒤 1737년 지평(持平)이 되었고, 이어 정언(正言)을 거쳐 군수가 되었는데, 백성에 대한 형벌이 가혹하여 관찰사의 탄핵으로 사임하였다.
그 뒤 사성을 거쳐 장령(掌令)에 취임하였는데 세자가 토론을 게을리한 데 대한 문책으로 1754년 삭직되었다. 기개와 절조가 있는 성격으로 권귀(權貴)에게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직언하여 관도를 떨쳤다. 안정복(安鼎福)과 우정이 두터워 그의 행장을 안정복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