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죽천사실」, 『난곡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06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태학(太學)에 들어갔으며, 1611년(광해군 3) 정인홍(鄭仁弘)이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의 문묘종사를 논핵하자 태학생인 이목(李楘)·오전(吳竱) 등 200여명과 함께 상소를 올려 정인홍을 배척하는 데 앞장섰으며, 이로 인하여 금고에 처하는 형을 받았다가 안방준(安邦俊) 등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그 뒤 용산서원(龍山書院)의 창건에 힘썼고, 박광전의 사적인 「죽천사실(竹川事實)」을 지었다. 뒤에 육현사(六賢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난곡유고(蘭谷遺稿)』 4권이 있다.
참고문헌
- 『난곡유고(蘭谷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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