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기화(箕和). 경상남도 합천 출신. 부인 김영규(金榮奎)는 이천 의병장 김하락(金河洛)의 딸이다.
1910년 일제의 주권침탈 이후 각지를 순회하며 독립사상을 고취하다가 일본경찰의 체포망을 피하여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김좌진(金佐鎭)·유동열(柳東說) 등과 왕청현(汪淸縣)에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를 조직, 활동하였다. 이해 11월 김좌진·정관해(鄭觀海) 등과 협의하여 김동순(金東淳)을 국내에 파견, 일제기관 파괴, 친일파암살 등의 공작을 시행하게 하고, 자신은 군자금모금 및 무기조달에 전력하였다.
1920년 군정서의 민사부(民事部) 책임자로 독립군에게 군량 및 무기를 조달, 공급하였고, 1921년 이후에는 오운현(烏雲縣)에 배달학원(倍達學院)을 설립, 청년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군사교육 등을 실시하였다. 그 뒤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항전하다가 전사하자 부인 김씨도 남편을 따라 순절하였다.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