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0년(인조 18) 건립. 총높이 309㎝, 비신의 높이 184㎝, 너비 76㎝, 두께 22.5㎝. 199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네모받침돌 위에 비신(碑身)과 이수(螭首)를 대리석으로 얹었다. 이수의 조각과 연꽃 · 영지(靈芝) 무늬를 새긴 받침돌의 조각은 좀 평면적이다.
비는 손자 정호(鄭灝)가 영의정 노수신(盧守愼)의 비문을 받아 세우려고 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세우지 못했다가 증손 정양우(鄭良佑) · 양필(良弼) 형제가 병조참판 오준(吳竣)의 글씨와 홍문관부제학 김광현(金光炫)의 두전(頭篆)을 받아 세웠다.
비음(碑陰: 비신 뒷면)에는 이런 사실과 함께 자손 170명의 명단을 기록한 추기(追記)가 있다. 추기는 충청도관찰사 정양필이 적고 예조정랑 유시영(柳時英)이 썼다.
비문에는 정대년의 성장과정과 관직생활, 그리고 간소한 생활과 엄정한 일 처리 등이 적혀 있으며, 이어 부인의 가계(家系)와 성품 및 자손에 대해 약술되어 있다. 글씨는 해서로 석봉체(石峯體)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