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년 신도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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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정대년 신도비각 전경
여주 정대년 신도비각 전경
서예
유적
문화재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동래정씨 사암공파 묘역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정대년의 신도비.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정대년신도비(鄭大年神道碑)
지정기관
경기도
종목
경기도 시도유형문화재(1993년 06월 03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여주시 장여로 561 (점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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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동래정씨 사암공파 묘역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정대년의 신도비.
내용

1640년(인조 18) 건립. 총높이 309㎝, 비신의 높이 184㎝, 너비 76㎝, 두께 22.5㎝. 199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네모받침돌 위에 비신(碑身)과 이수(螭首)를 대리석으로 얹었다. 이수의 조각과 연꽃 · 영지(靈芝) 무늬를 새긴 받침돌의 조각은 좀 평면적이다.

비는 손자 정호(鄭灝)가 영의정 노수신(盧守愼)의 비문을 받아 세우려고 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세우지 못했다가 증손 정양우(鄭良佑) · 양필(良弼) 형제가 병조참판 오준(吳竣)의 글씨와 홍문관부제학 김광현(金光炫)의 두전(頭篆)을 받아 세웠다.

비음(碑陰: 비신 뒷면)에는 이런 사실과 함께 자손 170명의 명단을 기록한 추기(追記)가 있다. 추기는 충청도관찰사 정양필이 적고 예조정랑 유시영(柳時英)이 썼다.

비문에는 정대년의 성장과정과 관직생활, 그리고 간소한 생활과 엄정한 일 처리 등이 적혀 있으며, 이어 부인의 가계(家系)와 성품 및 자손에 대해 약술되어 있다. 글씨는 해서로 석봉체(石峯體)를 따랐다.

참고문헌

『소재집(蘇齋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경기금석대관』7(이완우, 경기도,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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