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운봉현감, 곡성현감, 장수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후 영숭전(永崇殿)·문소전(文昭殿)·집경전(集慶殿)의 참봉을 거쳐, 군자감봉사·직장·주부·감찰·장례원사평 등을 역임하였다. 1586년 운봉현감, 1591년 곡성현감, 1594년에는 장수현감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한편, 1597년 정유재란 때 집에서 노부모를 봉양하고 있었는데, 왜군이 재침하였다는 급보를 듣고 노부모와 가솔을 거느리고 황석산성(黃石山城)으로 피신하였다. 그 뒤 왜군의 공격으로 성이 함락되어 양친이 모두 적에게 살해되자 시신을 찾아가지고 향리로 돌아와서 선영 아래 장사지내고 여막을 친 뒤 시묘하였다.
사람들이 잠시만 피해서 적이 물러간 뒤에 효도를 다해도 늦지 않다고 권하였으나 듣지 아니하고, 죽지 못해서 부모의 시신 옆에 있는 것도 죄가 되는데 자기 몸의 안전을 위하여 피신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울었다. 그러고는 더욱 묘를 수호하면서 겨울이 지나도 떠나지 아니하였다.
이듬해 왜군이 몰래 숨어들어와서 살해하고 말았다. 뒤에 나라에서는 그 효성을 표창하여 정려의 은전을 내렸다.
참고문헌
- 『동계집(桐溪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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