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경필(敬必).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 출신. 사헌부지평 정제호(鄭濟鎬)의 아들이다.
1876년 무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친군별영초관 겸 선전관(親軍別營哨官兼宣傳官)에 임명되었다가 충무위좌랑(忠武衛左郎)으로 옮겨졌다. 그뒤 훈련원주부 및 수주부(首主簿)로 승진하였다가 어모장군(禦侮將軍) 훈련원첨정이 되었다.
이때 조정군신들의 일제와의 강화 및 관리들의 부패를 통탄하여 사직하였다. 1910년 국권을 상실하자 통곡하며 포고문(布告文)과 토적문(討賊文), 자제들에게 주는 글 및 종족들에게 주는 글을 써놓고 완산부로 떠났다.
안찰사 이두황(李斗璜)에게 토역문(討逆文)을 제시하면서 “내가 힘이 부족하여 나라를 지키지 못하였으니 그 부끄러움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 죽어 귀신이 되어 왜적을 섬멸, 우리 선왕의 원수를 갚겠다.” 라고 하고 공북루(拱北樓)에 올라가 의관을 정제한 다음 목매어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