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팔계(八溪). 자는 무은(霧隱), 호는 적성재(赤城齋). 창녕 출신. 아버지는 정석망(鄭碩望)이며, 어머니는 현풍곽씨(玄風郭氏)로 곽호영(郭好英)의 딸이다. 송준길(宋浚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91년(숙종 17)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었다. 그 뒤 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제원찰방(濟原察訪)·율봉찰방(栗峰察訪) 등을 역임하였다. 1695년 친상(親喪)을 당하여 사직하였고, 1698년 다시 예조좌랑에 복직되었으며, 이어서 병조좌랑을 지냈다.
그 뒤 강원도사로 지공거(知貢擧)를 맡아 능력있는 선비들을 뽑아 썼다. 1703년 흥양현감이 되어 부역을 견감하고 세금을 줄이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705년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가려 할 때 군민들이 길을 막고 만류하였고, 비를 세워 그의 공덕을 칭송하였다. 저서로는 『적성재집』 1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