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소의 총책임자로서 수원유수가 당연직으로 겸임하였다. 정리소는 1794년(정조 18)에 완성된 수원성 축조, 장헌세자(莊獻世子)의 현륭원(顯隆園) 정화, 수원행궁(水原行宮)의 정비, 영흥본궁(永興本宮)의 수리, 온양 행궁의 정비를 기념하기 위한 수원에서의 대규모 국왕친림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그 해 12월에 설치되었다.
이 때의 정리소는 거국적으로 구성되었다. 총리대신(總理大臣)에 채제공(蔡濟恭), 정리사에 호조판서 심이지(沈頤之)를 비롯, 서유방(徐有防)·이시수(李時秀)·서용보(徐龍輔)·서유대(徐有大)·윤행임(尹行恁) 등의 중신들이 임명되었고, 낭청에 홍우영(洪宇榮) 등 4인이 임명되었다.
이 기념행사는 다음해 2월 정조의 친부모인 장헌세자와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의 탄생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며, 특히 혜경궁의 회갑연을 겸한 것이었다. 정리소에서는 이 행사에서 시설정비·의례진행·교통대책·물자조달·회계처리·기록보존과 기타 일체의 사무를 담당하였다.
이 행사를 위해 총 10만 3,061냥의 예산이 전국에서 조달되어 행사 비용에 6만 3,061냥이 지출되고 1만냥은 수원의 군사비로, 1만냥은 제주도 구호비로 책정하였다. 그리고 남은 2만냥을 8도에 각기 1,000∼3,000냥씩 분배해 쌀로 바꾸어 ‘정리곡(整理穀)’이라는 환곡의 자본으로 삼았다.
정리소는 기념행사가 끝난 뒤에 규모를 축소해 수원부내에 두고 수원부사를 정리사에 임명해 정리곡의 관리와 운영을 맡게 하였다. 정리곡은 혜경궁의 회갑연을 기념하기 위한 정조의 효성으로 설치된 것으로 흉년의 빈민구제에 기여하였다. 이것은 7년 후 4만석으로 증식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생기는 이식은 현륭원과 행궁의 보수유지비로 사용되었다.
1795년 윤 2월의 기념행사 내용이 『정리의궤(整理儀軌)』에 상세히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 간행을 위해 30만자의 새 동활자가 주조되었는데 이를 ‘정리자(整理字)’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