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일운(一運), 호는 익암(益菴). 좌의정 정유길(鄭惟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의정 정창연(鄭昌衍)이고, 아버지는 판서 정광성(鄭廣成)이다. 영의정 정태화(鄭太和)의 아우이다.
1652년(효종 3)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시강원설서·정언·수찬·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경연(經筵)에서 참소를 경계할 것을 왕에게 진언하였다.
이조정랑을 거쳐 1660년 황해도관찰사가 되고, 동부승지·경상도관찰사·예조참의·판결사(判決事)·병조참의·전라도관찰사·대사간을 거쳐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기민(饑民)을 구호하는 한편, 타도의 유민 수천명까지 구호하는 치적을 쌓아 이원익(李元翼)과 함께 평양에 생사당(生祠堂)이 세워졌다.
그 뒤 병조참판·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문장에 뛰어나 김상헌(金尙憲)·이정구(李廷龜) 등으로부터 찬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