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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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서원철폐령의 철폐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대원군의 노여움을 사 경상감영에 압류되었던 학자.
이칭
  • 기주(箕疇)
  • 문호(文好)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진양(晉陽)
  • 사망 연도1882년(고종 19)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00년(정조 24)
  • 출생지상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기주유집 / 척사부 미디어 정보

기주유집 / 척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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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서원철폐령의 철폐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대원군의 노여움을 사 경상감영에 압류되었던 학자.

개설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문호(文好). 호는 기주(箕疇). 상주 출생. 정경세(鄭經世)의 후손으로, 정상관(鄭象觀)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이전(二典)·삼경(三經)을 다독(多讀)하였으며, 제자백가서에도 정통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스스로 검소함을 지켜 마포(麻布) 옷이 아니면 평생에 입지 않았고, 자질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가정의 전통학(傳統學)을 우선하였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는 천고의 한이 이보다 더함이 없다고 주장하여 이를 반대하였고, 이듬해 영남유생을 대표하여 서원철폐령의 철폐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대원군의 노여움을 사서 50여 일을 경상감영에 압류되었다가 돌아왔다.

1882년 정신(廷臣)의 추천으로 특별히 선공감(繕工監)에 제수되었다가 얼마 뒤 돈녕부도정이 되었다.

참고문헌

  • - 『기주유고(箕疇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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