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전유장의 8대손 전두한(全斗漢)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서찬규(徐贊奎)의 서문, 권말에 전두한과 9대손 전병곤(全柄坤)의 발문이 있다.
2권 1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 있다.
권1에 시 42수, 소(疏) 3편, 서(書) 2편, 서(序) 1편, 잡저 4편, 권2에 부록으로 시 3수, 만사 14편, 제문 2편, 제현서독(諸賢書牘) 11편, 세계도·연보·행장·묘표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증별(贈別: 친한 사이의 정표로 시 등을 지어 주고 떠나보냄) 또는 은일적 감회를 읊은 것이 많다. 「별권의지(別權義之)」·「감음(感吟)」·「견민(遣憫)」 등에서는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소 가운데 「효묘복제변무소(孝廟服制卞誣疏)」는 영남의 유생 유세철(柳世哲) 등이 1659년에 있었던 효종의 복제가 잘못되었다고 당시 대신들의 실책을 탄핵하자, 그것을 반박하고 송시열(宋時烈)의 기년설을 적극 지지하는 내용으로 올린 것이다. 「영남구폐소(嶺南救弊疏)」는 동래부사로 있을 때 조정에서 책정한 전부(田賦) 표준량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그 시정을 요구한 글이다.
「상주설소대거통문(尙州設疏對擧通文)」은 유세철 등이 효묘(孝廟: 효종) 복제의 실책을 들어 당시 대신들을 문책하자고 상소한 데 대해 반대의 소를 올리고자 도내의 동지를 규합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 밖에도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문묘에 종사시킬 것을 요구한 「율곡우계양현변무종사소(栗谷牛溪兩賢卞誣從祀疏)」와 그것을 추진하기 위해 쓴 「유도내통문(諭道內通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