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미(伯微). 정호(鄭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관 정인형(鄭仁亨)이고, 아버지는 현감 정기(鄭磯)이며, 어머니는 황진(黃璡)의 딸이다. 성품이 과묵하고 문학을 숭상하였다.
김안국(金安國)의 문하에서 진우(陳宇)·김희년(金禧年)·장중인(張重仁)·유경인(柳敬仁) 등과 함께 수학하였다.
1535년(중종 30) 진우·유경인 등과 같이 고관 10여인을 제거하기 위하여 모의하였다는 혐의로 투옥되어 심문 끝에 극형에 처하여질 상황에서 세자의 도움으로 회덕에 유배되는 데 그쳤다.
3년간의 귀양에서 풀려나와 1543년(중종 38)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549년(명종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54년 검열, 1557년 봉교, 1559년 지평, 1561년 문학이 되었는데, 청렴결백하고 고지식하여 주변에 적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