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대방(大方). 정진(鄭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의정 정언신(鄭彦信)이고, 아버지는 정율(鄭慄)이며, 어머니는 원호준(元虎俊)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613년 승정원주서를 거쳐 4년 뒤 병조좌랑이 되었다. 하지만 이 당시 대북파의 이이첨(李爾瞻)이 집권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그의 장인 이효원(李孝元)이 소북파 유영경(柳永慶)의 일파라고 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1625년(인조 3) 사헌부지평·세자시강원필선·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하였으며, 1627년 2월 주문사(奏聞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30년 전라감사, 다음해에 승지를 지냈고, 1635년 다시 전라감사로 있다가 그 해 전주부윤으로 전직된 뒤 죽었다. 명민유재(明敏有才)라는 세평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