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의 활자본이다.
권1에는 이수봉(李秀鳳)과 저자의 서문이 실려 있다.
이어 병인양요 때 흥선대원군이 신하들에게 맹세한 척사서와 위정척사비문을 수록한 다음 척사서찬병소서(斥邪書贊幷小序), 위정척사비송병서(衛正斥邪碑頌幷序), 척사연구병소서(斥邪聯句幷小序)를 함께 수록해 흥선대원군의 쇄국양이정책을 지지, 찬양하고 있다.
또한 병인양요 때 승씨 문중에서 30명의 의사(義士)를 모집해 프랑스군과의 싸움에 출정했던 일과 관련되는 창의문(倡義文), 종군중에 반드시 지켜져야 할 조목을 기록한 행중엄조약(行中嚴條約), 백의로 종군하려면 공첩(公牒)이 필요하다면서 해당 고을 관청에 제출한 정본현문장(呈本縣文狀)이 들어 있다.
그 밖에 척사론, 격의회유문(激義回諭文) 등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고, 승씨 문중사람 수십 명을 모아 경복궁(景福宮) 중건에 참여한 사실을 기록한 부역일기(赴役日記)도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대신 지은 선파인종회문(璿派人宗會文)을 비롯해 공덕리(孔德里)의 아소당(我笑堂) 앞에 흥선대원군을 칭송하는 비를 건립하자는 취지의 오치상(吳致相)의 이중통문(里中通文)도 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이 병인·신미 두 양요 때 세운 위정척사의 업적을 기록한 비를 건립할 것을 강화도 병영과 개성 병영에 제의한 윤유영(尹有榮)의 정심영문장(呈沁營文狀), 지계원(池啓源)의 정송영문장(呈松營文狀)도 수록되어 있다.
또한 모화관에 흥선대원군의 쇄국양이의 공을 기리는 비를 세워 전국의 무사들이 이를 보고 감응하게 하자는 내용의 이용묵(李容默)이 지은 게모화관문(揭慕華館文) 등 장문(狀文)이 실려 있다. 이 밖에도 기생오동기(寄生梧桐記), 이잉실기(移輀室記), 만리현기(萬里峴記)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2에는 1871년 신미양요 때 저자가 위정척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적은 중양일자서칠률(重陽日自敍七律), 중양시서(重陽詩序)를 그 첫머리에 싣고 있다.
그리고 이에 차운한 홍준정(洪俊楨) 외 60명의 친지들의 시를 수록하고, 이어 육십일세수일술회칠률(六十一歲晬日述懷七律)과 이를 차운한 홍재철(洪在喆)·이회영(李晦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말미에 윤자명(尹滋命)의 후서(後序)와 안광묵(安光默)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아세아문화사에서 서벽외사해외수일본(栖碧外史海外蒐佚本) 15권으로 영인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