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해주 출신. 1919년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발행하는 독립신문을 비밀리에 해주로 반입, 배부하고 만주의 독립운동단체와 연락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12월 만주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근거를 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으로부터 국내조직을 목적으로 파견된 김기한(金起漢)과 만나게 되었으며, 김기한의 권유로 대한독립단에 입단한 뒤 황해도지단 조직에 착수, 지단장이 되었으며 1920년 3월에는 많은 동지를 포섭, 해주지단을 결성하였다.
이 단체는 재무장(財務長)·소모장(召募長)·의연대장(義捐隊長)·참모장(參謀長)·탐정원(探偵員)·통신원(通信員) 등의 부서를 두고 군(郡)·면(面)에 하부조직을 결성하여 조직을 강화시켜나갔다.
만주의 본부로부터 비밀리에 송부되어온 독립신문·격문·포고문·취지문 등을 단원에게 배부하는 한편, 각지에서 군자금 모금에 전력하였다. 그러나 1921년 8월 독립단조직이 일본경찰에 발각됨으로써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으며, 온갖 고문과 악형을 받은 끝에 해주지방법원에서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0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 불복하여 공소하였으나 1심과 같이 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복역중 고문의 여독으로 병에 걸리자 병보석으로 가출옥되었으나 곧 죽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