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경숙(敬叔), 호는 명암(明庵). 정유청(鄭幼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암(鄭淹)이고, 아버지는 정언(正言) 정성도(鄭成道)이며, 어머니는 이기징(李箕徵)의 딸이다.
1687년(숙종 13) 진사가 되고, 1699년 정시문과에 장원하였다. 1704년 정언으로 노론의 거두인 조태채(趙泰采)·이이명(李頤命)을 탄핵하다가 파직되었고, 이듬해 문학으로 기용, 안핵어사(按覈御史)가 되어 서북국경방면에 출몰하는 불법월경자의 상황을 조사, 보고하였다.
그 뒤 수찬·교리로 조세징수법을 시정하여 간리(奸吏)들이 은폐한 전답을 색출, 과세할 것을 주장하고, 백성의 부담을 격감시키기 위하여 군포(軍布)를 운반 도중 도적질하는 부정관리들을 엄중 단속할 것을 역설하였다.
1716년 응교로서 『가례원류(家禮源流)』 서문에서 소론의 영수 윤증(尹拯)을 비난한 권상하(權尙夏)를 논척, 파면시켰고, 승지를 거쳐 1719년 현신(賢臣)들을 무고한 혐의로 원주에 귀양갔다가 적소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