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윤(潤). 호는 일우(一雨). 함경남도 홍원 출신. 일제의 국권 침탈 이후 만주로 망명, 1918년 대한독립선언(무오독립선언)을 선포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중광단(重光團)에 입단,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중광단이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개편되자 인사국장으로 활동하였고, 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재만교민의 규합 단체로 총판부(總辦府)를 조직하자 간북북부총판부(墾北北部總辦部)의 재무관 겸 참사로 임명되어 교민 단결과 자치에 힘을 기울였다.
1923년 대한독립군 대표로 상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대회에 참가하였고, 1924년 대한교민단(大韓僑民團)의 회계조사원에 선임되었다. 1925년 북만주 영안현(寧安縣)에서 신민부(新民府)가 조직될 때는 대한독립군정서 대표로 참여하여 연락부위원장(連絡部委員長)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신민부 개편 때는 경리부위원장(經理部委員長)에 임명되었다. 그 해 길림(吉林)에서 개최된 독립운동단체통합회의에 신민부를 대표하여 참가, 군민의회(軍民議會)를 결성하고 민사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29년 김좌진(金佐鎭)과 함께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를 조직하였고, 김좌진이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된 뒤에는 홍진(洪震)·지청천(池靑天) 등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결성하고 소속 독립군으로 한국독립군을 편성하였다. 1931년 1월 길장현 화피역(吉長縣樺皮驛)에서 공산당원에게 피살되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