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와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강용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6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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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강용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6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56년 강용의 손자 강교원(姜敎元)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말에 강교원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10권 5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한국국학진흥원, 성균관대학교 존경각등에 있다.

내용

권1·2에 시 259수, 권3∼5에 소(疏) 1편, 서(書) 136편, 잡저 6편, 서(序) 3편, 기(記) 3편, 권6∼8에 발(跋) 6편, 명(銘) 4편, 찬(贊) 2편, 상량문 2편, 뇌사(誄辭) 3편, 축문 6편, 제문 15편, 묘지명 15편, 묘갈명 11편, 묘표 3편, 권9에 유사 2편, 권10에 부록으로 만사 35수, 제문 11편, 행장·묘지명·묘갈명·가장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시대적인 영향을 받아 불안과 울분을 토로한 것이 많은데, 「자경(自警)」·「술회(述懷)」·「우음(偶吟)」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정와팔경(靖窩八景)」과 「갈산팔경(葛山八景)」은 자신이 거처하던 곳과 친구가 거처하던 곳의 경치를 여덟으로 나누어 대조하면서 읊은 것이다. 소의 「을사의소(乙巳擬疏)」는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동조한 오적 대신을 참형으로 다스리고, 위협으로 체결한 조약은 성립될 수 없음을 내외에 선포하여 조약을 파기할 것을 요구한 글이다.

서(書) 중 「상귤산이상공(上橘山李相公)」은 법부대신 이유원(李裕元)에게 보낸 것이다. 정치의 문란과 외세의 침략은 위정자의 잘못에 기인한다고 지적하면서, 당로자(當路者)들은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해 정국을 쇄신하라고 촉구한 내용이다. 그밖에 이중원(李仲圓)·김위서(金渭瑞)·김양중(金養仲) 등과 교환한 서신은 시사(時事)·경전·상례·성리 등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찬의 「성학십도찬(聖學十圖贊)」은 이황(李滉)이 성학을 열 개의 도본으로 정리한 것은 후학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칭찬한 글이다. 「청해배행록(靑海陪行錄)」은 아버지 강하규(姜夏奎)가 청해군수가 되어 부임할 때 따라 가면서 노정과 풍물·경치 등을 소상하게 기록한 것이다. 「서시아손(書示兒孫)」은 죽음에 임해 자손들에게 유훈으로 남긴 글이다.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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