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유점본산 제2대 주지, 교정 등을 역임한 승려.
내용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서호선사(西灝禪師)의 제자가 되었고 보월화상(寶月和尙)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1873년(고종 10) 10월 금강산유점사(楡岾寺)에 들어가 나은(懶隱)·환경(幻鏡)·용호(龍湖) 등의 강백에게 사교(四敎)와 대교(大敎)를 이수한 뒤 정암사와 오대산월정사(月精寺) 선원에서 안거수선(安居修禪)을 통하여 선의 깊은 뜻을 체득하였다.
1891년 유점사·반야암(般若庵)에서 강석(講席)을 열어 학인들을 지도하였으며, 1897년 이후 1904년까지 유점사·연화사(蓮華寺)에서 강주(講主)로서 경학을 교수하였다. 1905년 연화사 만일회(萬日會)의 화주(化主)가 되어 큰 염불회를 경영하였다.
1912년에 31본산이 지정되면서 유점본산 감무(監務)가 되고 4년 후 본산 제2대 주지가 되었다. 1918년 법화회(法華會)를 베풀었고, 1926년에는 유점사에 동국경원(東國經院)을 신설하고 그 원장이 되었으며, 사교·대교과를 맡아서 학인 100여 명을 가르쳤다.
1929년에는 전 종단의 추대로 교정(敎正)에 취임하였고, 1934년에 외금강신계사보광원(神溪寺普光院)으로 옮겨 은거하다가 1936년 3월에 입적하였다. 나이 80세, 법랍이 62세였다.
참고문헌
- 『동선노사유고(東宣老師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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