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괴산 출신. 1919년 괴산에서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 유하현(柳河縣)에 설립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였다.
1920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지청천(池靑天)부대에 소속되어 항일전투에 참전하였다. 이 해 10월 일본군 대부대가 만주로 출병하여 대대적인 독립군소탕작전과 한국교민 대학살사건을 벌이자, 부대와 함께 소·만국경을 넘어 노령(露領) 이만으로 이동하였다.
1926년 이후 다시 만주로 돌아와 하얼빈에서 여관을 경영하며 독립군의 숙식과 연락을 맡아 활동하였다. 1930년 일본경찰에 붙잡혔으며, 그 뒤 대종교(大倧敎)에 관계하여 민족정신의 고취에 힘썼다.
1942년 일본경찰이 만주에 있는 대종교지도자를 일제히 검거할 때 붙잡혀 가혹한 고문을 받다 가석방되었으나, 출옥 후 5일만에 그 여독으로 죽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