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2년(공민왕 11) 승보시(升補試)에 합격하여 생원자격을 얻었으나 관직으로 이름을 남기지는 않았다. 사위 문익점(文益漸)이 원나라에 서장관으로 갔다가 귀국하면서 몰래 가져온 목화씨를 심어 3년간의 노력 끝에 재배법을 터득하여 종자를 널리 보급하였다.
또 씨를 뽑는 씨아[取子車]와 실을 뽑는 물레[繅絲車]를 모르던 차 때마침 집에 머물게 된 호승(胡僧)에게 물어 이를 고안하여 목화를 직조의 원료로 쓰는 법을 열어놓았다.
일설에는 아들 정문래(鄭文來)가 제사법(製絲法)을 고안하였고, 손자 정문영(鄭文英)이 면포 짜는 법을 알아냈다고도 전한다. 문익점과 함께 목화를 처음 심어 번식시킨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는 산청 목면시배 유지가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