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375㎝. 비신 높이 222㎝, 너비 105㎝, 두께 22.5㎝. 본래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지에 있던 것으로, 1915년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국보, 1962년 지정)과 함께 경복궁으로 옮겨왔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구로 이전됨에 따라 홍법국사탑과 탑비도 함께 옮겨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귀부(龜趺)·비신(碑身)·이수(螭首) 모두가 완전한데, 부리부리하게 조각한 귀두(龜頭)와 용틀임을 투각한 이수의 작풍이 주목된다.
홍법대사는 통일신라 신덕왕대(재위: 912∼917)에 태어나 12세에 출가하였고, 그 뒤 당나라에 들어가 각지를 편력하고 귀국하여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고려 성종 때 대선사(大禪師)의 칭호가 내려지고, 목종 때 국사에 봉하여 봉은사에 머물렀다. 그 뒤 정토사에 기거하다 입적하자, 목종은 시호와 탑명을 내리고 손몽주(孫夢周)에게 비문을 짓게 하여 1017년(현종 8)에 탑비를 건립하였다.
이수 앞면 가운데에 ‘實相之塔(실상지탑)’이라는 해서의 제액이 있고, 비신 상단부에는 ‘開天山淨土寺故國師弘法大禪師之碑(개천산정토사고국사홍법대선사지비)’라는 전액(篆額)이 있다. 비문 앞면에는 행적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문도들의 직명이 적혀 있는데, 편마암의 비 표면이 마멸되어 판독이 어렵다. 글씨는 2㎝ 정도의 구양순류의 해서로, 짜임새가 정리되었으나 변화가 적은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