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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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삼화부윤, 성진감리, 성진부윤 등을 역임한 관료.
이칭
  • 도여(道汝)
  • 혜전(惠田)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초계(草溪)
  • 사망 연도1945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59년(철종 10)
  • 출생지강원도 횡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하원호 (고려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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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삼화부윤, 성진감리, 성진부윤 등을 역임한 관료.

개설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도여(道汝), 호는 혜전(惠田). 강원도 횡성 출신. 첨지중추부사 정책화(鄭策和)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5년(고종 22) 음직(蔭職)으로 기용되어 원산감리서서기관(元山監理署書記官)에 임명되었다.

서기관 재직 때 개항장의 방파제공사에 국고금 10만 냥을 절약하여 총세무사(總稅務司)의 신임을 받았고, 그 뒤 부산항에 근무할 때는 일본인의 횡포를 막고 조선인의 권익을 옹호하는 데 노력하였다. 1896년 경흥구지사(慶興口知事)에 임명되고 주임관 5등이 주어졌다.

러시아와의 교역항인 경흥의 지리적 위치를 이용, 러시아와 외교활동에 노력하였다. 1897년에는 삼화부윤으로서 다시 삼화감리를 겸하였으며, 이 해 진전(眞殿) 영건과 선희궁(宣禧宮) 이건시 감동(監董) 궁내대신 이하 공로에 따라 시상할 때 가자(加資 : 품계를 올려 줌)되었다.

1899년 성진감리 겸 성진부윤이 되고 주임관 4등이 주어졌다. 그 뒤 안악군수를 역임하고 안산에 낙향하여 있던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사재를 털어 독립운동의 자금을 조달하였으며, 일본경찰의 요시찰인물로 지목되어 감시를 받다가 광복 직후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일성록(日省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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