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도여(道汝), 호는 혜전(惠田). 강원도 횡성 출신. 첨지중추부사 정책화(鄭策和)의 아들이다.
1885년(고종 22) 음직(蔭職)으로 기용되어 원산감리서서기관(元山監理署書記官)에 임명되었다.
서기관 재직 때 개항장의 방파제공사에 국고금 10만 냥을 절약하여 총세무사(總稅務司)의 신임을 받았고, 그 뒤 부산항에 근무할 때는 일본인의 횡포를 막고 조선인의 권익을 옹호하는 데 노력하였다. 1896년 경흥구지사(慶興口知事)에 임명되고 주임관 5등이 주어졌다.
러시아와의 교역항인 경흥의 지리적 위치를 이용, 러시아와 외교활동에 노력하였다. 1897년에는 삼화부윤으로서 다시 삼화감리를 겸하였으며, 이 해 진전(眞殿) 영건과 선희궁(宣禧宮) 이건시 감동(監董) 궁내대신 이하 공로에 따라 시상할 때 가자(加資 : 품계를 올려 줌)되었다.
1899년 성진감리 겸 성진부윤이 되고 주임관 4등이 주어졌다. 그 뒤 안악군수를 역임하고 안산에 낙향하여 있던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사재를 털어 독립운동의 자금을 조달하였으며, 일본경찰의 요시찰인물로 지목되어 감시를 받다가 광복 직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