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관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군자감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금이(琴易)
  • 희율(希栗)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압해(押解, 전라남도 신안)
  • 사망 연도1618년(광해군 1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군자감정
  • 출생 연도1568년(선조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차용걸 (충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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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군자감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압해(押海). 자는 희율(希栗), 호는 금역(琴易). 정옥형(丁玉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응두(丁應斗)이고, 아버지는 정윤복(丁胤福)이며, 어머니는 사헌부감찰 한경상(韓景祥)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2년(선조 35)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607년 회답사 여우길(呂祐吉) 일행의 일본사행에 서장관으로 다녀왔다. 1613년(광해군 5) 사헌부지평 때 영창대군을 죄주자는 주장을 맨 처음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1614년 군자감정으로 있을 때 정온(鄭薀)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처형에 대하여 부당함을 상소하였다가 논죄되자, 정온의 죄를 가벼이해줄 것을 상소하였다가 파직되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우복집(愚伏集)』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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