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미산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일찍이 정훈(庭訓)으로 과거공부에 열중하였으나 뜻을 바꾸어 이이(李珥)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본받아 『가학연의(家學演義)』를 편찬하고 수신의 지침서로 활용하였으며, 1860년 부친의 명으로 화림사(花林寺) · 법화사(法華寺)를 찾아 경학과 예학에 정진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79년 부친과 모친상을 당하여 6년간을 지극한 효성으로 마쳤으니 정환주가 왕래했던 성묘(省墓)길을 효자로(孝子路)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 후 정환주는 세상에 뜻을 잃고 숨어 살면서 백이(伯夷)와 도연명(陶淵明)의 지취를 누렸으며, 죽을 순간까지 찾아오는 빈객들과 학문을 토론하였다.
정환주는 『소학(小學)』 · 『중용(中庸)』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였으며 당시 유행하던 이기설(理氣說) · 사칠논변(四七論辨)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었다. 정환주의 대표적인 제자로는 권기덕(權基德) · 강민영(姜敏永)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미산유고(薇山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동국유현연원(東國儒賢淵源錄)』
- 『미산유고(薇山遺稿)』
주석
-
주1
: 정환주 저술 : 『미산유고(薇山遺稿)』(국립중앙도서관 古3648-70-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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