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사훈(士勳). 정승근(鄭承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식(鄭式)이고, 아버지는 정기문(鄭起門)이며, 어머니는 홍정(洪禎)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73년 사헌부지평을 거쳐 사간원헌납에 서임되었다. 이 때 외척을 등용하지 말도록 진언하였다가 선조로부터 관리의 등용은 인물의 현부(賢否)에 의한 것이라는 힐책을 받았다.
그 뒤 1579년 다시 서인의 등용을 막으려 하자 이발(李潑) 등으로부터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1592년 안동부사로 재임중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근왕(勤王)을 빙자하고 처자를 거느리고 길주로 달려가 길주부사가 되어 정문부(鄭文孚)와 호응하여 왜적과 싸웠다.
그러나 비변사로부터 안동부사로 있을 때 왜적을 막지 않고 도망한 망군부국(忘君負國)의 죄를 지었다는 탄핵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