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제석사

  • 종교·철학
  • 유적
  • 삼국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무왕 당시의 사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상국 (문화재관리국, 서지학)
  • 최종수정 2024년 05월 13일
익산 제석사지 미디어 정보

익산 제석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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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무왕 당시의 사찰.

내용

절터 부근을 ‘제석들’이라고 부른다. 백제의 무왕이 왕도를 왕궁평으로 옮겨 잡은 뒤, 궁궐 근처에 제석천(帝釋天)을 주존으로 모시는 내불당(內佛堂)으로 절을 창건하고 왕실의 번영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였던 사찰이다.

639년(무왕 40) 11월에 큰 뇌우(雷雨)로 인해서 창건 당시의 불전과 7층목탑, 낭방(廊房) 등이 완전히 전소되었다. 그러나 7층목탑의 심초석(心礎石)에 봉안되어 있던 7보(寶)와 불사리병(佛舍利甁), 동판에 새긴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 중에서 불사리병과 금강반야경만은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리병의 뚜껑이 열리지 않았고 안의 사리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무왕은 발정화상(發正和尙)을 청하여 참회법회를 하게 한 뒤 열어보니 불사리 6개가 모두 병 안에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이 절의 중창 여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사지에서 불상과 석등의 옥개석, 종편(鐘片) 등이 발견되었고, 7층탑지로 추정되는 작은 토루에서 제석사의 이름이 적힌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절 이름이 확인되었다.

현재에도 7층탑지 토루의 중심부에는 장방공(長方孔)이 뚫려 있는 심초석이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1965년 백제 무왕의 궁터라 전하는 왕궁평의 성내에 있는 5층석탑내에서 발견된 유물과 이 절의 7층목탑 속에 있었던 유물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5층석탑내에서도 금판의 금강경과 청색의 맑은 유리병에 담겨 있는 16개의 사리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제석사가 폐허화된 뒤 무왕은 제석사의 중창 대신에 5층석탑을 건립하여 그 유물을 봉안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도 있다. 절터는 1998년 사적 익산제석사지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 - 『미륵산(彌勒山)의 정기』(익산군,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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