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자약(子約), 호는 수월(水月). 영양 원당리(榮州元塘里)에서 출생. 아버지는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에 증직된 조광인(趙光仁), 어머니는 광주안씨(廣州安氏)이다. 7세에 부모를 모두 잃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글을 배우자 항상 『소학』을 들고 다녔고, 옛 사람의 좋은 말이나 착한 행실을 들으면 마음으로 기뻐했다. 효성이 지극하여 할머니가 병들어 강어회(江魚膾)를 먹고자 하였는데 때마침 겨울이라 돈을 가지고도 살 수가 없어 강을 따라 수십리를 울면서 올라갔는데 까치가 모여 우는 곳에서 잉어(鯉魚)를 얻어서 할머니의 병을 고치니 그 마을 이름을 고쳐서 비리동(飛鯉洞)이라 불렀다 한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제가 모두 의병을 일으켜서 화왕산성(火旺山城)으로 가서 곽재우(郭再佑)를 도와 적을 무찌르는데 전공을 세웠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청군(淸軍)과 대치하자 늙어서 싸움에 참가하지는 못하고 집 뒤에 단(壇)을 모아 국가의 병란(兵亂)을 물리치고 임금이 무사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그 뒤부터 그 곳을 축천단(祝天壇)이라 불렀다. 조검은 또 집 뒤에 사의정사(思義精舍)를 지어 마을의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서사(書史: 경서와 사기)로 소일했다. 저서로는 『수월일고(水月逸稿)』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