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으로 활동하며 화왕산성 전투에 참여하였고, 『수월일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제가 모두 의병을 일으켜서 화왕산성(火旺山城)으로 가서 곽재우(郭再佑)를 도와 적을 무찌르는데 전공을 세웠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청군(淸軍)과 대치하자 늙어서 싸움에 참가하지는 못하고 집 뒤에 단(壇)을 모아 국가의 병란(兵亂)을 물리치고 임금이 무사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그 뒤부터 그 곳을 축천단(祝天壇)이라 불렀다. 조검은 또 집 뒤에 사의정사(思義精舍)를 지어 마을의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서사(書史: 경서와 사기)로 소일했다. 저서로는 『수월일고(水月逸稿)』 2권이 있다.
참고문헌
- 『단구지지(丹邱地誌)』
- 『수월일고(水月逸稿)』
- 『여지승람(輿地勝覽)』
- 『해동삼강록(海東三綱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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