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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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으로 활동하며 화왕산성 전투에 참여하였고, 『수월일고』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수월(水月)
  • 자약(子約)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한양(漢陽)
  • 사망 연도1644년(인조 22)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70년(선조 3)
  • 출생지영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수월일고 미디어 정보

수월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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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으로 활동하며 화왕산성 전투에 참여하였고, 『수월일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자약(子約), 호는 수월(水月). 영양 원당리(榮州元塘里)에서 출생. 아버지는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에 증직된 조광인(趙光仁), 어머니는 광주안씨(廣州安氏)이다. 7세에 부모를 모두 잃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생애 및 활동사항

글을 배우자 항상 『소학』을 들고 다녔고, 옛 사람의 좋은 말이나 착한 행실을 들으면 마음으로 기뻐했다. 효성이 지극하여 할머니가 병들어 강어회(江魚膾)를 먹고자 하였는데 때마침 겨울이라 돈을 가지고도 살 수가 없어 강을 따라 수십리를 울면서 올라갔는데 까치가 모여 우는 곳에서 잉어(鯉魚)를 얻어서 할머니의 병을 고치니 그 마을 이름을 고쳐서 비리동(飛鯉洞)이라 불렀다 한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제가 모두 의병을 일으켜서 화왕산성(火旺山城)으로 가서 곽재우(郭再佑)를 도와 적을 무찌르는데 전공을 세웠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청군(淸軍)과 대치하자 늙어서 싸움에 참가하지는 못하고 집 뒤에 단(壇)을 모아 국가의 병란(兵亂)을 물리치고 임금이 무사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그 뒤부터 그 곳을 축천단(祝天壇)이라 불렀다. 조검은 또 집 뒤에 사의정사(思義精舍)를 지어 마을의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서사(書史: 경서와 사기)로 소일했다. 저서로는 『수월일고(水月逸稿)』 2권이 있다.

참고문헌

  • - 『단구지지(丹邱地誌)』

  • - 『수월일고(水月逸稿)』

  • - 『여지승람(輿地勝覽)』

  • - 『해동삼강록(海東三綱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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