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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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조눌인법첩』, 『눌인서첩』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이칭
  • 눌인(訥人)
  • 정보(正甫)
인물/전통 인물
  • 본관용담(龍潭)
  • 사망 연도1840년(헌종 6)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72년(영조 48)
  • 출생지평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완우 (원광대학교, 미술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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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조눌인법첩』, 『눌인서첩』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내용

본관은 용담(龍潭). 자는 정보(正甫), 호는 눌인(訥人). 평양에 살았고 벼슬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조눌인묘지(曺訥人墓誌)」에 “집이 가난하여 사방으로 다니며 글씨를 배웠다. 처음에 이광사(李匡師)의 글씨를 배웠고, 만년에는 안진경(顔眞卿)의 서체를 터득하였다.

행(行)·초(草)는 청의 유용(劉墉)을, 지예(指隷)는 장도악(張道渥)을 따랐다.”고 한다. 신위(申緯)와 김정희(金正喜)가 크게 추천하였는데, 김정희는 “창아기발(蒼雅奇拔)하고 괴위정특(怪偉挺特)하니 압록강 이동에 일찍이 없었다.”고 하였다.

특히, 전(篆)·예(隷)에 금석기(金石氣)가 보이며 고법(古法)의 임모(臨摸)에 뛰어났다. 서첩으로 『조눌인법첩(曺訥人法帖)』·『눌인서첩(訥人書帖)』 등이 전하며, 『근묵(槿墨)』·『근역서휘(槿域書彙)』 등에 그의 진적이 보인다.

참고문헌

  • - 『간송문화(澗松文華)』 19 -추사서파고(秋史書派考)-(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1980)

  •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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