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담(龍潭). 자는 정보(正甫), 호는 눌인(訥人). 평양에 살았고 벼슬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조눌인묘지(曺訥人墓誌)」에 “집이 가난하여 사방으로 다니며 글씨를 배웠다. 처음에 이광사(李匡師)의 글씨를 배웠고, 만년에는 안진경(顔眞卿)의 서체를 터득하였다.
행(行)·초(草)는 청의 유용(劉墉)을, 지예(指隷)는 장도악(張道渥)을 따랐다.”고 한다. 신위(申緯)와 김정희(金正喜)가 크게 추천하였는데, 김정희는 “창아기발(蒼雅奇拔)하고 괴위정특(怪偉挺特)하니 압록강 이동에 일찍이 없었다.”고 하였다.
특히, 전(篆)·예(隷)에 금석기(金石氣)가 보이며 고법(古法)의 임모(臨摸)에 뛰어났다. 서첩으로 『조눌인법첩(曺訥人法帖)』·『눌인서첩(訥人書帖)』 등이 전하며, 『근묵(槿墨)』·『근역서휘(槿域書彙)』 등에 그의 진적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