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구하 ()

근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강원도관찰사, 의정부우참찬,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기서(箕敍)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15년(순조 15)
사망 연도
1877년(고종 14)
본관
풍양(豊壤)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강원도관찰사, 의정부우참찬,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기서(箕敍). 조병현(趙秉鉉)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40년(헌종 6) 유학(幼學)으로서 식년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 1842년 전라우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민정을 시찰하고 실정(失政)한 수령을 보고, 치죄하도록 하였다.

이듬해 도청교리(都廳校理)를 거쳐 1847년 홍문관부제학이 되었다. 1860년(철종 11) 이조참의를 지내고, 1862년 전국적으로 민란이 일어나자 왕이 호남의 대소민(大小民)에게 내린 윤음(綸音)을 반포하기 위하여 선무사(宣撫使)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부안 등 각 읍의 난민들의 소요를 막지 못하여 파직되고 말았다. 1864년(고종 1) 실록편찬을 위한 동지실록사(同知實錄事)를 맡았다가 이재원(李載元)과 교체되고, 1866년 형조·예조의 판서와 이듬해 대사헌을 지냈다.

1869년 강원도관찰사로서 선정을 베풀다가 자신의 해직을 상소하였으나 수리가 되지 않고, 오히려 이듬해 치적이 현저하다 하여 인민이 더 재임해줄 것을 요청, 1년 동안 임기가 연장되었다.

1871년 한성부판윤이 되었고, 전강원도관찰사로서 강원도에서 시정되고 보완되어야 할 정사 6조목을 상주하였다. 1874년에는 의정부우참찬·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헌종실록(憲宗實錄)』
『철종실록(哲宗實錄)』
『고종실록(高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청선고(淸選考)』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