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양(平壤). 조문신(趙文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전(趙戩)이고, 아버지는 조승(趙乘)이며, 어머니는 변계량(卞季良)의 딸이다.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그 전 1436년(세종 18)에 가각고부록사(架閣庫副錄事)로 재임하고 있었는데, 사헌부로부터 할아버지 전이 장리(贓吏)라 하여 『경제육전』의 규정을 들어 파직시키라는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440년에는 성균관학정을 겸직하고 있었으므로 사헌부로부터 다시 탄핵을 받아 겸직이 면제되었다. 1455년(세조 1) 세조가 등극하자 좌익공신 3등에 책록되었으며, 형옥(刑獄)을 감독하는 도관랑(都官郎)에 임명되었는데, 이 때도 할아버지의 죄과를 들어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1461년 참지중추원사에 서임되고, 이듬해 주문사(奏聞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건주위(建州衛) 야인에게 강제로 끌려간 창성진(昌城鎭)의 인축(人畜)을 쇄환(刷還)해줄 것을 요청하도록 하였다. 명나라에 체류중 병으로 죽으니, 예부낭중(禮部郎中) 이화(李和)를 보내어 치제(致祭)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