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성균관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는 벼슬을 하지 않고, 다만 시냇가에서 낚시질로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스스로 어계라 칭호하였다. 1698년(숙종 24)에 노산군(魯山君)이 단종으로 추복(追復)되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703년 경상도 유생 곽억령(郭億齡) 등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의 예에 따라 생육신인 조려도 사당을 세워 제향하도록 건의하였던바, 1706년에 그대로 시행되었다.
고향인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는 그를 비롯하여 김시습(金時習)·이맹전(李孟專)·원호(元昊)·남효온(南孝溫)·성담수(成聃壽) 등이 제향되어 있다. 1781년(정조 5)에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어계집(漁溪集)』이 남아 있다.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