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성수(聖受). 조형면(趙亨勉)의 아들이다.
음직으로 출사하여 1866년(고종 3) 비안현감으로 재직중 관찰사에 의하여 치적이 보고되어 승서(陞敍)되었고, 1875년 강릉부사를 지낼 때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의 사고(史庫) 보전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1876년 경과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883년 우부승지로서 신정희(申正熙)·임응준(任應準) 등의 처벌 철회를 바라는 원의계(院議啓)를 승정원에서 올리기도 하였다. 1891년 성균관대사성을 지내고 1900년 책인조성(冊印造成) 때에는 독금책인관(讀金冊印官)을 맡아 가자(加資 : 품계를 올려 줌)되었다.
이듬해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되어 칙임관 4등이 주어졌고 태의원경(太醫院卿)을 역임하였다. 1905년에는 예식원장례경(禮式院掌禮卿)으로 칙임관 2등이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