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실(子實), 호는 설정(雪汀). 주부(主簿) 경인(景仁)의 아들이며, 좌상 심수경(沈守慶)의 외손이다.
1609년(광해군 1) 진사가 되었고 1624년 현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가 되었으며, 특진관(特進官)을 겸하였다. 1645년(인조 23) 좌승지에 이어 호조판서로 승진하고 하령군(夏寧君)에 봉하여졌다. 1647년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임지에서 죽었다.
글씨를 잘 썼는데, 증손 하망(夏望)의 「하령군행장(夏寧君行狀)」에 “처음에는 송설(松雪)을 좋아하였으나 외형미에 치우친 점이 싫어 왕희지의 법을 참작하니 체기(體氣)가 농수(濃粹)하였다.”고 전한다.
필적으로 해행(楷行)의 이군산방기(李君山房記)와 『근역서휘(槿域書彙)』에 실린 행초(行草)의 오언절구 등을 보면, 대체로 해서는 송설체를 따랐고 행초는 법을 달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석으로 영변의 보현사편양당대사비(普賢寺鞭羊堂大師碑), 고양의 좌상유홍비(左相兪泓碑) 등을 썼다. 그림과 시도 잘하였다. 저서로는 『설정시집』 6권이 있다. 『대동서법(大東書法)』 등에 필적이 모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