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북청 출신. 일찍이 기독교인이 되어 신학수업을 위하여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에 유학하였다. 목사이자 소설가였던 전영택(田榮澤)과 동창이다.
졸업 후 전영택과 함께 감리교 협성여자신학교에서 강의를 맡기도 하였다. 1925년 이후 한국기독교계 일각에서는 기독교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는데, 이순기(李舜基)와 함께 제시한 농촌교회 구제책이 논의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24년에는 김포 지역에 많은 농장을 건설하여 농촌발전에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1929년『조선농촌구제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사회 각층에서 상당한 관심을 보였으며, 한국교회의 농촌운동 지침서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48년 정부수립 후 황해도 배천군수가 되어 농촌지방행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얻었으나, 6·25사변 때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공산군에 의하여 납북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