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양 출신. 유시연(柳時淵)의진에서 중군장으로 활약하였다. 3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안동·영양·예안 등 경상북도 일원을 전전하며 각처에서 일본수비대 혹은 경찰서를 습격, 교전을 벌이는 등 활약을 하였다.
그러나 1908년에 들어와 이 일대에 대한 일본군의 ‘토벌’작전이 빈번해짐에 따라, 유시연과 함께 의진을 해산하고 각지를 전전하면서 동지를 규합하는 일에 진력하였다.
그 뒤 1913년 5월 모금한 군자금을 가지고 유시연과 함께 서간도로 탈출하던 중 영주의 반구(盤丘)왜경소 소속 일본경찰에게 붙잡혀, 9월 대구지방법원에서 1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석방된 뒤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살았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