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방직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간, 집의,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수죽(脩竹)
  • 숙청(叔淸)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양(豊壤)
  • 사망 연도1637년(인조 1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집의|좌부승지
  • 출생 연도1574년(선조 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승희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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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 집의,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숙청(叔淸), 호는 수죽(脩竹). 조세헌(趙世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덕기(趙德期)이고, 아버지는 장령 조응록(趙應祿)이며, 어머니는 조극근(趙克勤)의 딸이다. 이해수(李海壽)와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장령·사간·집의를 거쳐 1633년(인조 11) 좌부승지에 이르렀다. 1627년 이인거(李仁居)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소무공신(昭武功臣)이 되고, 다음해유효립(柳孝立)·정심(鄭沁)의 치옥에 공을 세워 영사공신(寧社功臣)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가자 김집(金集)과 함께 근왕(勤王)하고자 달려갔으나 뜻대로 안 되자, 되돌아와서 여러 고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모았으며, 병으로 직접 싸우지는 못하고 김집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죽음에 임하여서도 의곡(義穀)을 거두어 병량(兵糧)을 도우라는 말을 남겼다. 성리학에 뛰어났으며 저서로 『수죽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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