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숙청(叔淸), 호는 수죽(脩竹). 조세헌(趙世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덕기(趙德期)이고, 아버지는 장령 조응록(趙應祿)이며, 어머니는 조극근(趙克勤)의 딸이다. 이해수(李海壽)와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장령·사간·집의를 거쳐 1633년(인조 11) 좌부승지에 이르렀다. 1627년 이인거(李仁居)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소무공신(昭武功臣)이 되고, 다음해유효립(柳孝立)·정심(鄭沁)의 치옥에 공을 세워 영사공신(寧社功臣)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가자 김집(金集)과 함께 근왕(勤王)하고자 달려갔으나 뜻대로 안 되자, 되돌아와서 여러 고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모았으며, 병으로 직접 싸우지는 못하고 김집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죽음에 임하여서도 의곡(義穀)을 거두어 병량(兵糧)을 도우라는 말을 남겼다. 성리학에 뛰어났으며 저서로 『수죽유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