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백능(百能). 재주와 학문이 뛰어나고 의기가 있었다.
1592년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리와 군사들이 모두 흩어지니, 경상도 일대가 적군에게 유린되었다.
왜란이 일어난 지 불과 5, 6일 만에 창녕·현풍·의령·영산 등지가 모두 적군에 의하여 분탕되자 지방 의사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곽재우(郭再祐)의 휘하에서 의령·창녕·현풍·삼가·초계·합천 등지를 전전하며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지산(砥山)싸움에서 순국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승지에 추증되었다.